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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 교수칼럼
 
 
아프리카 케냐 단기선교 여행
경희사이버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이병원

출발
경희기독교수회 아프리카 케냐 단기 선교팀은 2006년 7월 15일 방콕을 경유하여 7월 16일 새벽 케냐 나이로비 케냐타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유부웅 목사님의 인도로 리무르에 있는 선교센터에서 조찬을 하고 바로 에티오피아 국경 투르카나 사막으로 향했다.
여행은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무슨 아름다움이 있을까? 우리 일행은 사실 영국의 여왕보다 더 아프리카 아이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우리 크리스천에게 농경문화보다는 유목생활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유목민적 삶은 방황이 아닌 목적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목가적인 삶은 이동을 위해 짐을 간결하게 하고 갈 길에 대해서는 인샬라(하나님만 아신다)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국립의료원에서 황열병 주사도 맞았다. 한 여름이지만 한국의 초가을 날씨와 같다고 해서 이에 대한 옷가지도 준비를 했다. 아침식사 후 일제 봉고차 3대와 한국산 갤로퍼 1대에 몸을 싣고 하루 종일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방콕에서 나이로비까지 타고 온 케냐항공(KQ)의 서비스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좋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비행기도 괜찮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과거에는 에티오피아 항공이 좋았었단다.
나이로비에서 북서쪽으로 한 참 달린 후 우리나라의 대전과 같은 교통중심 도시이자 대통령 하계 궁전이 있는 나쿠르의 휴게소에서 기름을 넣은 후 찻집에서 케냐의 커피와 차를 맛보며 실링을 사용할 수 있는 첫 기회를 가졌다. 물가에 대한 감각은 없었지만 차와 커피 값이 싸다는 것을 느꼈다. 아침 식사 때 선교센터에서 1인당 100달러에 해당하는 케냐 7,000실링 씩 교환했었다. 차와 커피는 주로 우유를 많이 타서 그런지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맛이 났다.
차창 밖으로 나쿠루 호수와 홍학(플라밍고)이 보였다. 과거 20년 전에는 150만 마리의 홍학이 살았는데 환경오염으로 요즘은 대부분의 홍학이 탄자니아와 말라위로 가서 아주 적은 수만 남아 있었다. 동물이 떠나면 다음은 인간도 떠나야 할 것이다. 투르카나 사막에도 동물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나쿠루에서 서북쪽으로 달려 한국의 평양이라고 할 수 있는 북부의 거점도시인 엘도렛에서 다시 주유했다. 엘도렛은 인도인 등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으며 차가 많이 나는 도시이다. 엘도렛의 호텔에서 소다수를 마시고 쉬었다. 엘도렛은 투르카나 지역의 교회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조달하는 곳이다. 이곳 건물의 지붕은 주로 양철로 되어 있는데 두껍고 코팅이 잘 되어야 더운 날씨에 오래 견딜 수 있다.
다시 북쪽으로 꺾어 한국의 신의주와 같은 카펭구리에서 주유를 하며 쉬었다. 북쪽의 최후 주유소이며 이곳은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 운동가를 귀양 보내던 곳이다. 이곳을 넘으면 포곳 산족이 산다. 옛날에 이곳을 지나던 대상을 털던 곳이다. 이 지역은 해발 3천미터로 마라톤 학교도 있다.
카펭구리를 넘어 계곡을 타고 내려가면 투르카나 사막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이 카이눅이다. 카이눅의 의미는 “사막너머”이다. 유 목사님이 처음 교회를 세운 곳이다. 여기서 카공, 로키차, 카사로이, 로페차로 이어진다.



16일
16일 첫째 날은 카이눅의 터커 웰(물이 흐르는 곳) 수력발전소의 영빈관에 여장을 풀었다. 터커 웰 수력발전소는 경제성이 없지만 이스라엘의 국가이익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케냐의 40%가 사막인데 이 댐에는 물이 많고 대통령 별장도 있다.
영빈관의 시설은 낡고 수돗물도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다음 날 사막을 다녀오고 나서 샤워를 하고서는 영빈관의 고마움을 새삼 느꼈다. 저녁은 수력발전소 구내식당에서 치킨소스에 우가리라는 옥수수 흰떡, 그리고 양고기 등을 먹었다.

17일
첫날 밤 단잠은 시차문제로 새벽 2시면 깬다. 그래서 새벽 2시 반에 조별로 샌드위치로 식사를 한 후 출발했다. 유목민이 사는 카페세, 카이눅, 카공, 로페롯 사막지역의 교회와 초등학교, 유치원을 방문하여 선교물품로 옥수수, 축구공, 배구공, 탬버린, 옷, 사탕, 말라리아 약 등을 일일이 전달하였다. 이 투카나 지역은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이슬과 안개도 없었다.
창세기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신화적일 수 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는데, 지금의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을 거쳐 이집트까지 갔다.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다른 부족이 사는 지역으로 가는 것이 어려운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낸 것은 모험이고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70명의 식솔들을 이끌고 갔다. 우르는 당시 번영하던 농경지였지만 그 좋은 지역을 떠나 하란으로 갔다. 아브라함은 목숨을 걸고 갈 바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투카나 사막에 서서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했다. 비전이나 안전의 보장도 없이 다른 부족의 땅으로 가라고 했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다른 부족 지역으로 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투카나 사람이 포콧까지만 와도 서로 죽인다.
유 목사님이 개척한 카이눅 교회는 사막의 교회이고 포콧의 교회는 산족들의 교회이다. 지금도 서로 죽이기도 한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순종이자 생명을 걸었던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8일
18일 새벽 빅토리아 호수가 있는 키스무로 향했다. 케냐의 제3의 도시이다. 이곳에는 루오 부족이 살고 있다. 과거에 노예 집산지라서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노예를 날랐던 철도가 이곳에서 출발하여 나이로비를 거쳐 몸바사 항구까지 이어졌다. 이 철도로 인해 숨겨진 도시가 문명권으로 나오게 되었다.
키스무의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시내 설렁탕 집 같은 식당에서 빅토리아 호수에서 잡은 생선튀김과 우가리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야채시장에 들러 과일을 사 호텔로 돌아와서 수영하고 먹었다. 저녁은 시내 치킨 바비큐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성공회 신부인 주교 바비에로의 가족을 초대하였다. 비숍 바비에로는 한국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석사를 받은 주교로 이 지역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분이었다.
빅토리아 호수는 오래 전 리빙스턴 선교사가 석양을 보며 영국 여왕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호수로 명명하였다.

19일
유 목사님이 처음 교회를 개척한 kokise로 갔다. 당시 전기와 전화도 없이 빅토리아 호숫가에서 교회와 사택을 손수 지었다. 자녀들과 보내며 말라리아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도 한 곳이다. 교인들이 준비한 튀긴 생선과 양고기, 우가리, 패션쥬스 등으로 점심을 먹었다.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방문하여 교장 코디아와 선생님들을 만났다. 오는 길에는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초대 대통령의 아들인 건설부장관이 이 지역 출신이라 타 지역보다 도로공사를 쉽게 하고 있었다. 케냐 사람들은 이런 일들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저녁은 호텔에서 먹었고, 경영대학의 강병서 교수님의 재미난 사회로 여흥시간을 가졌다. 준비된 사회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일
새벽에 새소리로 인해 잠에서 깼다. 이곳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며 새 소리가 참 아름다웠다. 아침 식사 후 성공회 교회와 여자대학교를 방문하고,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리빙스턴 기념교회 건설현장을 방문하여 축구공 등 선물을 전달하였다. 공사규모가 커서 유 목사님께서 기금조성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이곳은 노예감옥소였는데 당시 성공회 교회가 노예해방에 노력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케냐성서공회로 사용하고 있다. 담 벽에서 노예들의 절규하는 자국들을 볼 수 있었다.
키스무를 출발하여 케리초 분기점에서 정경숙 사모님을 선교센터로 갤로퍼 차로 보냈다. 서부 케냐인 오멧을 거쳐 나록을 우회하여 마사이 마라로 갔다. 오후 2시 반에 마사이 마라의 키코록 클럽에 여장을 풀었다. 시설이 아주 좋았다. 과거에 오아시스가 있었고 영국여왕과 총독이 머물렀던 곳이라서 호텔이 자리잡고 있었다. 호텔의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손님 대부분이 백인이었다.
4시에 사냥감 보호지역에 가서 봉고차 뚜껑을 열고 사파리 투어를 했다. 사자, 기린, 얼룩말, 누우, 가젤, 타조 등을 보았는데 이 동물들은 탄자니아에서 케냐의 셀렝게티로 넘어오는 첫 동물들이라고 했다. 서양인들은 얼룩말과 기린을 좋아한단다. 특히 얼룩말의 히프가 매력적이란다.
저녁에는 비가 왔는데 마사이 댄스를 볼 수 있었다. 목소리와 높이 점프하는 것이 특이했다. 이들은 모란이라는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화랑과 같이 전국 산천을 돌며 수련을 한다. 저녁에는 피곤하여 단잠을 잤다. 하마소리와 하이에나 울음소리가 들렸다.

21일
아침식사를 하고 사파리 투어를 하며 나이로비로 향했다. 한국 관광객의 30% 정도는 여기까지 와서 사자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운이 좋았나보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그램은 최소한 한 달 이상 머물며 가장 좋은 것들만 촬영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본 것은 거기에 비하면 박진감이 떨어진다. 호랑이는 이 지역에 살지 않아 볼 수 없었다. 큰 암사자를 2미터 거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 멋있었다.
나이로비 근처 리무르에 있는 선교센터에서 정경숙 사모님이 준비한 된장국, 김치 등 한국음식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 나이로비 시내 빌리지 마켓에서 타조 알, 뿔 등의 선물을 샀다. 과거에는 상아와 검은 나무인 흑단이 추천품목이었는데 가짜가 많단다. 손재주가 좋은 캄바족의 동물 목상, 바구니, 목걸이, 탄자나이트, 호박목걸이, 순면 티셔츠, 차, 커피 등 유명하다.
저녁 열차를 타기위해 나이로비 역으로 가서 7시 쯤 열차에 올라 식당차에서 옛날 영국식 정찬의 고품격 식사를 했다. 기차는 2등석 침대칸으로 1칸에 2층으로 된 4인용이었다.



22일
아침 8시 정도에 몸바사 역에 도착예정이었다. 그러나 기관 고장 수리로 오후 2시 반에 도착했고, 6시간 정도 지연되었지만 지연이유에 대한 설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아침은 기차 안에서 저녁보다는 한 단계 아래인 식사를 했다. 기차가 달리면 동네아이들이 나와 손님들이 무엇인가 던져주기를 기다렸다. “out of africa”에 나오는 몸바사행 열차를 타고 온 것이다.
몸바사의 “white sand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4시에 차와 다과를 무료로 주는 해변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해변의 모래가 밀가루 같았다. 몸바사는 홍해, 이디오피아, 소말리아,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남아공 케이프타운을 잇는 무역로로 번창했다.
중동 부족왕인 술탄의 아랍문화와 아프리카 해안 갈라부족의 문화가 혼합되어 독특한 스와힐리 문화를 이루고 있다. 언어이전에 문화가 있었다. 중동의 술탄문화인들이 해안을 타고 와서 무역을 하고, 식민지를 건설하고 정착하기도 했다.
스와힐리어에는 외래어가 많다. 학교는 슐레라고 하는데 독일어에서 왔고, 설탕은 스카이로 영어 슈가와 비슷하다. 스와힐리어는 언어는 있으나 문자는 없다.
하나님을 뭉구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찬양을 뭉구 유매마라고 한다. 아마 선교지를 돌며 쌍테사나 예수(감사 예수)와 뭉구 유매마(좋으신 하나님) 찬양은 백번 이상 불렀다.
스와힐리 문화를 보려면 잔지바르까지 가야한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것으로 블랙재즈, 바비큐, 에이즈 문화 등이 있다. 현대의 원류가 아프리카이다. 인구대비 나이트클럽과 디스코클럽이 가장 많은 곳이 나이로비다.
갈라부족은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인의 혼혈이며 서구형의 체형으로 탄자니아에서 잔지바르까지 정착해서 살고 있다.

23일
킬리피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부임한지 2주일이 된 흑인목사님은 미남이었고, 찬양지휘자 여집사님의 찬양이 열정적이었다. 찬양지휘자가 영감을 받아 선창을 하면 성도들은 따라 부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선교물품 전달과 헌금을 하고, port jesus로 갔다. 100년간 포루투칼, 스페인, 로마교황이 군대를 파견하여 처절한 전쟁이 일어났고, 십자가와 이슬람기가 번갈아 꽂히기도 한 곳이다. 박물관에는 중국도자기와 큰 물고기 뼈 등이 있었고, 바다를 향한 대포와 바스코 다가마가 만든 등대 두 개, 노예를 가두었던 감옥 및 대기소 등을 보았다. 점심은 레스토랑 홍콩에서 상어지느러미 슈프, 랍스타, 새우튀김과 생선찜 등을 먹었다. 합창 찬양도 하였다.



24일
새벽 6시 비행기로 몸바사 모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중에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르(약 5,800미터)산을 볼 수 있었고, 창문너머로 사진도 찍었다. 이륙 45분만에 케냐타공항에 도착하여, 봉고차와 갤로퍼로 케냐 마운틴의 윌리엄 홀덴 산장을 향했다. 모이는 전 대통령 이름이고 초대 대통령이 케냐타이다. 현재 대통령의 고향인 니에리를 거쳐 블루마운틴 커피가 나는 무랑가를 지나 윌리엄 홀덴 산장에 도착하였다.
윌리엄 홀덴은 60년대 미국 최고의 배우로 케냐에서 여러 영화를 찍었고, 마운틴 케냐에 산장을 만들었다. 2미터가 넘는 상아와 각종 동물로 호텔클럽을 장식했고, 특히 검은 나무로 격조 높게 만든 식당은 일품이었다.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낮에는 마운틴 케냐 정상(약 5,300미터)이 구름에 가리었으나 저녁에 정상을 볼 수 있었는데 중간에 만년설이 있었다.
케냐 설화에 킬리만자르는 남자의 신이고, 마운틴 케냐는 여자의 신(닭벼슬 모양)으로서 서로 결혼하여 케냐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케냐의 국조는 닭이다.
케냐는 78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지고, 통치는 티카와 니에르 지역의 키쿠유족이 하고 있다. 이 지역의 특산품인 커피가 비싸서 부자부족이며 계산이 밝다. 한국의 경상도와 비슷하며 권력 지향적이다. 빅토리아 호수 지역의 키스무의 루오족은 한국의 호남과 비슷하여 계속 당해왔다고 한다. 나이로비의 중심은 키쿠유족이 잡고 있다. 윌리엄 홀덴 산장의 참나무 테이블이 인상적이었고, 밀레니엄 교회에서 기도회도 가졌다. 골프장 주위를 마라톤으로 달렸다. 산소가 부족하여 숨이 찼다. 몸바사 해변에서 마라톤 할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25일
아침을 먹고 아브델라 포레스트를 거쳐 북서쪽으로 가서 대통령 전용별장이 있는 나쿠루를 거쳐 보고리아로 갔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점심 후 큰 수건 하나씩 받아 보고리아 호숫가에 있는 노상온천에 갔다. 모이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고, 아무 시설도 짓지 못하게 한 곳이다. 온천의 유황 물이 100도나 되며 튀어 오르는 물기둥을 중심으로 바람이 부는 반대방향에 있으면 수증기로 땀이 저절로 났다.
호수에는 홍학이 많았다. 온천에서 돌아와 호텔 온천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수영장카페에서 바비큐로 저녁식사를 했다. 더운 날씨여서 에어컨을 틀었으나 소리만 요란하고 시원하지는 않았다. 모기장을 쳤지만 모기장 속으로 들어온 모기를 6마리나 잡으며 혼자 긴 기도시간을 가졌다. 모기 덕분에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다.



26일
아침 식사 후 나쿠루를 거쳐 리무루의 선교센터에 와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리무루에 있는 마지막 총독인 kentmere의 저택에 여장을 풀었다.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구내 이발소에서 이발을 했는데 아프리카 식이 되었다. 당분간 모자를 쓰고 다니기로 했다. kentmere club 직원사택에 가서 어린아이들에게 매직을 보여주고 볼펜을 나누어 주었다.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리무루 시장을 구경하고 노방전도와 찬양을 했다. 모든 당나귀 등에 십자가가 자연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탔던 당나귀의 후손들인가 보다. 벽난로에 장작을 때며 잠을 청했다.

27일
세인트 폴 대학과, 케냐 기독교 연합수련관을 방문했다. 세인트 폴 대학은 명문신학대학교로 유 목사님이 1987년부터 교수로 사역하던 곳이다. 도서관과 기념교회를 들러 기도도 했다.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 매직을 보여주며 찬양도 함께했다.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환영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다. 우리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는 아이들로 그 자리를 빠져나오는데 10분이나 걸린 것 같다. 너무 감동적이었다.
limuru country club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운전사이자 신학생인 george의 부친인 관광회사 사장 harry jones karicho와 여성시의원 mwangi와 그 딸(우간다 캄팔랴대 경제학과)이 초대되어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kentmere club으로 돌아와 장작을 지피며 케냐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28일
나이로비 시내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했으나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모른다. 아무 설명도 없다. 옆의 파충류 공원을 보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직을 보여주고 찬양도 했다. 매직을 보고 신기해하는 학생들로 인해 너무 기쁘고 재미가 좋았다. 나이로비 대학교를 방문하여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좋은 대학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내부로 들어가지 못한 점이 아쉽다.
나쿠마트(슈퍼마켓)에서 커피와 차 그리고 eureca라는 책을 샀다. 풍물시장에서 타조알과 그림 등을 샀다. 이제 공항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공항에서 수속 밟는데 3시간 정도는 족히 걸린 것 같다. 유 목사님과 정경숙 사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면세점으로 들어와 케냐 음악테이프와 선물을 몇 개 사고 비행기에 올랐다.
15일간의 여정을 통해 아프리카 케냐에서 21세기 구약성경의 장면들을 목격하였다. 21세기의 소년 다윗도 만났다. 아브라함과 모세에 나타났던 하나님과 불타는 가시덤불이 거기에 있었다. black jesus도 만났다.



 
5   아프리카 케냐 단기선교 여행 2006-12-19 10,598     
4   젊은 세대에 희망이 2006-08-31 1,574     
3   無題 2006-05-26 1,834     
2   꿈은 이루어진다 2006-04-26 2,054     
1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학문 연구 2006-03-3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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